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른스트 룀 (문단 편집) == 돌격대 참모장 == 1930년 9월 히틀러가 SA를 장악하여 수장인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이때 북독일의 돌격대 중 일부를 지휘하던 슈테네스가 히틀러의 방침에 반발하면서 돌격대가 흔들리자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잘로몬 폰 페퍼를 해임하고 히틀러가 직접 돌격대 최고지도자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조직관리나 행정능력은 지극히 낮았으므로...'''], 덕분에 다음해 1월에는 룀이 SA 참모장을 맡게 되어 실질적인 수장이 되었다. 거리가 실업자와 불만분자로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돌격대에 들어오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돌격대의 수는 30년에는 7만이었다가 31년에는 17만명, 1933년 기준 나치당원은 40만 명 정도였으나 돌격대원은 300만 명에 달했다. SA는 나치당과는 독립된 [[준군사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도 SA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격대의 지도자인 룀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참모장이 된 룀은 측근을 지휘부에 앉히고 조직 내에 급진적인 사상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SA는 당 인사 경호임무를 [[SS]]에 넘겨주고 본격적인 [[정치깡패]]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은 나치당에 적대적인 [[공산주의]]자나 유대인을 두들겨 패고 다녔으며, 반대 의사를 표하는 학자, 언론인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당시 룀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SA는 노동쟁의에 자주 개입하여 노동자 편을 들었다. SA의 이런 행동으로 나치는 좌파 정당들의 지지기반을 잠식할 수 있었으나, 무분별한 폭력성과 과도한 음주, 그리고 룀 자신을 비롯한 SA 수뇌부의 동성애적 경향과 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당내 보수세력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와 룀은 서로를 총통 각하(Mein Führer)가 아니라 '''너'''[* [[독일어]]로 "Du". 이것은 꼭 낮춤말은 아니다. 관계의 상하가 아니라 멀고 친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에게도 du를 쓴다. 이것과 대비되는 Sie(당신)은 공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 결과적으로 히틀러를 du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친구처럼 매우 친한 관계였다는 의미이다.]라 칭했다. 다른 이들은 슬슬 히틀러를 '''총통 각하'''(Mein Führer)라고 높여 부르고 있었으며, 오직 룀과 나치당내 초기 가입자나 히틀러의 군대 고참이나 전우, 일명 '노전사'이라 불리는 소수만이 총통을 감히 '''너(Du)'''라고 칭할 수 있었다. 심지어 룀은 히틀러를 '''아돌프'''라며 직접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에른스트 룀은 한때 히틀러의 상관이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